올해 10월 14일. 저는 제가 아주 많이 좋아하는 한 가수의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무려 4년 만에 열린 공연이었죠. 아는 사람만 아는 TMI를 알려드리자면요, 저는 4년 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는 그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 세종시에 갔던 적이 있답니다. 세종문화회관이니까 세종시에 있는 줄 알았거든요. 순천에도 순천문화예술회관이 있는 것처럼요. 물론 콘서트를 놓치진 않았어요. 공연 하루 전에 세종시에 살던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왜 세종까지 오냐는 질문에, 세종문화회관을 가려고 한다는 제 대답에, 친구는 어쩜 넌 이렇게 너같냐며 세종문화회관은 서울 광화문에 있다는 걸 알려줬거든요. 큰일날 뻔 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부끄럽진 않았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을 세종시로 옮겨야 하는 게 아니냐고 뻔뻔하게 응수했어요(참고로 세종문화회관은 1978년도에 개관했고 세종시가 출범한 것은 2012년입니다.). 좀 촌스러운가요?
아무튼 2023년으로 돌아와, ‘똥손’에 가까운 제 실력으로는 도무지 잡을 수 없었을 좋은 자리를 운 좋게 양도받은 덕분에 저는 아주 가까이에서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노래를 들었어요. 2023년이 채 끝나지 않은데다 이 글을 쓴 다음날 저는 스위스로 여행을 떠나겠지만, 감히 제 2023년 최고의 날은 10월 14일이라고 못박을 수 있을 만큼 황홀한 날이었어요.
그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데뷔해 제가 산 시간보다 더 오래 노래를 불러왔습니다. 그의 노래가 늘 비슷하다는 사람들에게, 그는 “왜 꼭 달라져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한결같으면 한결같다고, 변하면 변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 우리는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되는 거겠죠.
공연의 제목은 ‘Meoldy’였어요. 15년 전 발매된 그의 5집 앨범 수록곡이죠. 이 노래의 1절 가사는이렇습니다.
Melody, 한마디 말보다 / 진실한 맘을 전하는 메시지
아련한 기억의 조각들 / 어제처럼 되살리는 마치 마술같은 힘
Melody, 언제 어디든 / 가슴을 맘껏 울리는 종소리
메마른 거리의 풍경 하나하나에도 / 생명을 불어넣고 이야길 만들어준
나를 살아가게 해 줬고 / 세상을 사는 동안에 / 한번쯤 이루고픈 부푼 꿈을 꾸게 했고
서투른 마음도 감히 전해볼 수 있도록 / 또다른 내가 되어준 그 Melody
그가 쓰고 부른 곡들 중에는 유독 노래 그 자체에 관한 것들이 많습니다. ‘meoldy(2008)’가 그렇고, ‘그 노래(2014)’가 그렇고, 그 후에 발표된 ‘노래(2018)’가 그러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에 관해 끊임없이 노래해 온 것이지요. 제가 자꾸만 ‘쓰기’에 관한 글을 쓰게 되는 것또한, 그가 그랬듯 그것에 관해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게 쓰기란 무엇이며, 그걸로 뭘 하고 싶은지, 또는 뭘 해야 한다고 믿는지. 그런 걸 생각하다가 오히려 써야 할 것을 쓰지 못하는 날들도 많았지만요.
이어지는 가사들을 읽어 봅니다. 살면서 지나칠 법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알게 해준 것, 모자란 생각도 감히 적어볼 수 있게 해준 것, 숨가쁜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어준 것, 아득히 먼 내 미래를 비춰줄 빛줄기와 같은 것. Melody의 자리에 Writing을 적어 넣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네요. 그의 노래를 들을 때면 살고 싶어져요. 그것도 아주 잘. 그런 노래 같은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살아가고 싶게 하는 그런 글을요.
권수정
순천시 주무관. 대학시절을 포항에서 보내고 순천으로 돌아왔다. 지방에서 나고 자라고 공부하고 일하고 있는 만년 지방이.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글을 쓴다. <제주방랑>, <권수정 산문집> 등 세 권의 독립출판물을 냈고 3년째 여수 MBC 라디오에서 매주 책을 소개하고 있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던 도시에 벌써 5년째 살고 있다. 때때로 상경한 친구들이 부럽지만 아무래도 지방이 몸에 맞는 걸까. 탈지방, 탈다이어트. 왠지 해야 할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것들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