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이 아니라 꿈을 사는 이들이 찬란하게 빛나던 오후였습니다.
아직은 스스로가 많이 젊다고 여겨지는 날, 늘 상상이나 몽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꿈을 떠올리는 일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여전히 막연하기만 한 그 거대한 여백을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이내 가득 채우기 때문입니다. 현재에 만족하는 법을 터득한 스스로가 어쩐지 좀 비겁하게 느껴지고 새로운 꿈을 떠올리자니 가득 두려워집니다. ‘꿈’과 나 사이에 바다가 몇 개, 우주가 몇 개. 그동안 살아오면서 했던 작은 도전들이 그저 귀엽게만 보입니다.
스피치 강의를 부탁 받아 중고등학교에 갈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 즈음엔 늘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자꾸만 ‘꿈’이 뭐냐고 물어서 답답하고 초조하겠지만, ‘꿈’ 같은 거 없어도 된다고. 그냥 살다보면 생기기도 하고 안 생길 수도 있다고. 내일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행복 역시 중요하다고. 마치 제 스스로에게 하는 독백처럼 비교육적?인 말을 흩뿌리고는 조금은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놈의 ‘꿈’이란 걸 이뤘다면 나도 누군가의 ‘꿈’이 되었을까? 그랬다면 행복했을까 하면서요. 아나운서가 아니라 다른 걸 꿈 꿨었냐고요? 글쎄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타고르가 남긴 말을 기억합니다. 별을 놓쳐 슬퍼하다가 별빛마저 잃지는 말자는 말.
“그래, 이렇게 파도에 휩쓸리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지도 몰라. 인생의 파도 위에서 즐겁게 균형을 잡으면 돼!”
다행히 이제 제게 ‘꿈’이 뭐냐고 묻는 이들은 없습니다. 혹 지금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저는 ‘행복?’이라고 답하고는 고개를 갸우뚱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니, 내 꿈은 테니스 대회 우승!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그러고는 어색하게 웃어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