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테니스를 시작했다. 30년 동안 일편단심 나의 사랑이었던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해서였다. 축구는 기껏해야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니 운동이라기보다는 게임에 가까웠고 루틴이라기보다는 이벤트에 가까웠다. 삼십 대 후반, 자꾸만 떨어지는 체력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그라운드에 나설 때마다 되던 게 잘 안됐고 이십 대의 팔팔한 녀석들을 상대하며 자괴감이 쌓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 축구 커리어를 마감할 수는 없었다. 축구 없는 삶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지난봄, 그래서 나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테니스가 요즘 내 삶을 세차게 흔들고 있다. 당신은 혹시 양다리를 걸쳐본 적 있는가. 당신은 짜장인가 짬뽕인가. 나는 오늘도 축구 몰래 테니스 바람을 피운다. 축구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첫사랑이라면 테니스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불꽃같은 사랑. 축구가 강북의 칼국숫집이라면 테니스는 강남의 오마카세!
지난 8개월, 나는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아니, 훈련했다. 일과 육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테니스에 쏟았다. 요일이 필요 없다. 계절도 의미 없다. 테니스를 칠 수 있는 날과 칠 수 없는 날이 있을 뿐. 그렇게 뭔가에 몰입해 열정을 쏟아 부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테니스는 새로운 활력이자 의미 그리고 ‘꿈’이었다. 나는 ’아마추어 테니스 대회 우승‘이라는 꿈을 꾸며 매일 생동했다. 회춘했다.
자, 이제 11월 17일 금요일 격전지로 가자. 영하의 온도와 바람, 가는 눈발까지 휘날리던 날. 나는 비장하게 라켓 한 자루 들고 코트에 나선다. 텐텐 오픈. 수십 명의 남자들이 몸을 풀며 상대를 곁눈질한다. 고도의 집중력 대결. 극한의 체력 싸움. 고독하게 홀로 서서 움직이는 공을 받아쳐야만 한다.
6:1 / 6:4 / 6:4 / 6:1 / 6:1 / 6:4 나는 예선 두 경기와 16강, 8강, 4강 그리고 결승까지 모조리 이기며 우승했다. 믿기지 않았다. 뭔가를 해냈다고 느낀 게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나를 만드신 신을 찬양했다. 가족에게 감사했다. 코치님 얼굴이 떠올랐다. 보라색 코트 위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내일 죽어도 좋다고. 여한이 없다고.
해냈다. 나의 윔블던.
더이상 나를 테린이라 부르지 말라. 나는 우승자다. 챔피언이다.
프레디 머큐리여 풍악을 울려라!
다음은 롤랑 가로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