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영화를 배운다고요?”
‘영어’강사가 아니라 ‘영화’강사라고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할 때면 사람들은 꽤나 흥미로워했다. 에세이 쓰기 모임에서 내가 가진 글감을 쭈욱 펼쳐 놓았을 때도, 가장 호응이 좋았던 건 학교에서 학생들과 영화 만드는 이야기였다. 정작 나는 내키지 않았다. 내게 이 일은 오래전부터 ‘곧 그만둬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건 그것에 대해 오래 생각하는 일인데, 그러다 이 일을 더 사랑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세상에! 더 사랑하게 될까 걱정이라니! 써놓고 보니 세상천지 쓸데없는 걱정이다, 진짜!
학생들과 이야깃감을 고르고 재미있는 상상을 더해가며 시나리오를 만드는 일은 적성에 맞았다. 각자의 역할을 정하는 과정에서 용기와 배려를 배우고, 촬영하는 동안 약속과 책임의 무게를 경험한 학생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고 느꼈다. “선생님~ 내년에도 우리 학교에 오시죠?” 매년 이맘때면 약속한 듯 묻는 말에 한 번도 시원하게 “당연하지!”라고 답한 적이 없다. 그건 마음의 문제이기도, 형편의 문제이기도, 제도의 문제이기도 했다.
일이 주는 보람과 별개로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아이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는데 내가 가진 한계에 이들까지 가두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자주 했다. “그래도 우리 애들이 영화수업 제일 좋아하잖아요!” 속 깊은 선생님들이 가끔 던져주시는 말 한마디에 만 가지 고민을 숨긴 채 여기까지 왔지만, 이 정도 마음으로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지 자신이 없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이 일이 발목 잡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좋아하는 글씨 쓰는 일로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은 마음, 그림 연습에 매진해 보고 싶은 마음, 글이든 영상이든 내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 다시 작은 공간을 꾸리고 싶은 마음까지 종종 일렁이는데 본업에 소홀한 사람이 되기 싫어 일을 키우지 않았다. 과감한 결단을 내려 이 일을 그만두고 나를 사지에 몰면 새로운 열정이 타오를까? 취학을 앞둔 아이 엄마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건가? 내 마음의 크기가 아직 작아 주저하는 일들에 허울 좋은 핑계를 대고 있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게 하는 건 제도의 문제도 크다. 강사들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 정책 변경에 휘둘릴 때마다 나는 맞서 싸우기보다 마음을 덜어내는 쪽을 택했다. 올해도 문체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 하에 기존 강사들을 대량 해고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예술강사들의 시위와 학교비정규직노조의 연대로 겨우 막아냈다. 문화예술교육 예산을 늘려 해결해야 할 문제를 꼼수 정책으로 눈가림하려는 시도는 매년 이어졌고, 심지어 내년엔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 하니 현장의 강사들은 기운이 빠진다. 더 비참한 꼴을 당하기 전에 내 발로 나가야지 하는 마음을 자꾸 먹게 된다.
영화제를 며칠 앞두고, 마지막 수업을 마친 5학년 아이들이 손수 만든 편지지에 편지를 써서 가져왔다. 받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아. 망했다.’였다.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감동을 주면 또 흔들리는데….
편지엔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에 대한 감사 인사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들 중 절반은 유치원 때부터 만난 학생들이다. 한글이 서툴렀던 시절엔 색종이로 온갖 것들을 접어 마음을 전해주던 녀석들, 앞니 빠진 귀여운 얼굴로 달려와 안기던 장면, 혀짧은 소리로 선생님! 선생님! 하며 아무 말을 쏟아내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야기 만들기 시간이면 유독 진지하게 글쓰기에 집중하던 아이들. 주인공 자리를 두고 치열한 오디션을 벌였던 순간들. 말 없는 친구가 버럭 내뱉는 대사 한마디에 함께 희열을 느끼고, 모두가 꺼려하는 역할을 맡아준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법을 배우며 우리는 같이 성장했다. 어깨가 나란해진 지금은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는 사이가 되었다. 얘네들 졸업할 때까지만 같이 있을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11년째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매년 다시 지원하고, 다시 배치받아야 하는 신세. 교문 앞을 지키던 늙은 소나무도 학교를 떠났고, 단군 할아버지와 신사임당도 자리를 옮겼는데 나는 여기 이대로 고여 있어도 괜찮은 걸까? 이 학교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와 떠나야 하는 이유를 두고 매일 저울질했다.
사실 이 글은 지방방송 시즌3 첫 번째 원고로 썼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해 묵혀둔 글이었다. 그 사이 두 편의 원고를 쓰면서 내가 이 일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 학교 학생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영화제 전날 새벽,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터져 나와 남편 앞에서 오열한 게 무색하게, 며칠 후 나는 내년에도 이 학교에 재배치를 희망한다고 신청하고 말았다.
내년엔 학교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입주를 시작했고, 지금 전교생 숫자에 버금가는 수의 학생들이 전학 올 것으로 예상된다. 2-3년 후 아파트 단지 내에 신설되는 학교가 완공되고 나면 다시 떠날 학생이 많을 거라고 한다. 운동장엔 그들을 수용할 모듈교실을 짓느라 포크레인과 기중기가 돌아다니고 있다. 학생 수와 학급수가 얼마나 늘어날지, 영화수업과 영화제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아직 모른다. 다만 나는 여기서 이 아이들을 더 지켜보고 싶다. 이 일을 더 사랑해 보고 싶다.
이로운
10년 전,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살아보고 싶어 순천으로 왔다. 작은 초등학교 영화 선생님, 마을 도서관에선 그림책 선생님, 가끔은 캘리그라피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이 작은 도시에서 나의 쓸모를 알아봐 주고 불러주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일 저 일을 병행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 순천생활 10년을 정리하며 <네 번째 서랍>이라는 작은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