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짝꿍이 말했다.
“내가 5학년 2반 명은이랑 같이 살고 있었네.”
나는 크게 웃어버렸다. 영화에 나오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와 그에 수반되는 감정들, 명은이 품은 질문들이 내가 그에게 들려주었던 내 유년 시절 이야기, 그리고 지금까지 내 안에 자리한 고민과 겹치는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명은이의 비밀을 알아갈수록 내 일기장을 공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화끈거렸다.
“그러게. 나도 이렇게까지 비슷할 줄은 몰랐어. 근데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그게 감독의 역량이겠지.”
“아냐. 완전 이로운이야. 난 앞으로 누가 이로운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이 영화를 보라고 할래.”
그가 놀리는 게 싫지 않았다. 이만큼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엔 유독 좋은 영화를 많이 만났다. 저마다의 강렬함으로 나를 감동케 한 많은 영화를 제치고 <비밀의 언덕>을 올해의 영화로 꼽을 수밖에 없는 이유. 리뷰를 꼭 남기고 싶었는데 잘 쓰고 싶은 욕심에 미루고 미루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홀로 앉아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글을 읽은 당신, 이 영화를 본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거 내 얘긴데요.”
“아니거든요, 내 얘기거든요.”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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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이는 영화 시작 30분 만에 이어폰을 끼고 게임 속 세상으로 들어갔다. 언젠간 너랑 영화 보고 깊은 대화를 나눌 날이 올까? 내가 가진 어떤 면이 너를 부끄럽게 할까? 너의 비밀의 언덕엔 어떤 이야기들이 쌓이게 될까? 엄마가 다 알 수 없는 너의 세계를 충분히 위로하고 만져줄 존재들이 네 곁에 가득하길.
이로운
10년 전,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살아보고 싶어 순천으로 왔다. 작은 초등학교 영화 선생님, 마을 도서관에선 그림책 선생님, 가끔은 캘리그라피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이 작은 도시에서 나의 쓸모를 알아봐 주고 불러주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일 저 일을 병행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 순천생활 10년을 정리하며 <네 번째 서랍>이라는 작은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