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은 특히 분주했다. 따로 마음 쓸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역할을 하기 위해 학교에 갈 일이 많았다. 첫째 어린이는 올해 대안학교에 입학했다. 제 나이보다 이르게 학교에 간 이유는 7세부터 입학이 가능한 학교였고, 이전에 다니던 장애 통합어린이집에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년이면 초등 과정에 입학해야 하니, 만약 이곳에 적응할 수 있다면 하루라도 더 학교생활을 연습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발달장애 특성을 조금씩, 두루 가진 첫째 아이는 언뜻 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또래보다 살짝 어린 것 같고, 단순히 개성 강한 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금방 알 수 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아이와 같은 반 친구가 내게 말했다. “유화는 아기 같아요. 정말 동생 같아요~”
유화는 관계에 미숙하고,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다. 5세가 되어서 비로소 말을 시작했기 때문에 대화 또한 자연스럽지 않다. 기초적인 학습이나 규칙을 배우는 것도 시간이 배로 필요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자유로운 영혼 그 자체인 것 같기도 하다. 다행인 건 그런 중에도 자기만의 속도로 계속 성장했다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정말 조금씩 조금씩. 30개월부터 유화와 함께 치료를 이어온 선생님께서 얼마 전 조심스럽게 치료 종결 계획에 대해 말씀하셨다.
대안학교를 선택한 건 아이가 가진 특수성도 있었지만, 짝꿍과 나 모두 공교육 안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포함한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아이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바라본 학교 시스템은 학생들이 가진 고유성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확장 시켜나가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물론 아이의 성장이 학교 시스템으로 모두 결정되지 않는 것도 알고 있다. 좋은 친구, 함께하는 부모, 선생님의 역할이 아이의 성장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다른 선택지를 고르고 싶었다. 알음알음 순천과 인근 지역 대안 학교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작년 가을쯤. 지금 다니고 있는 사랑어린학교에 입학 문의를 하고 상담을 했다. 단순히 입학에 관한 상담만 했을 뿐인데, 학교에선 감사하게도 우리를 잊지 않고 여러 행사 소식을 전해 주었다. 와서 함께 해도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작년 12월, 우리는 학교 연극제를 관람하러 갔다. 총 두 편의 연극을 올렸는데, 하나는 전 학년 학생들과 마을 배움터 어른들이 모두 함께 모여 하는 연극이고, 다른 하나는 9학년 졸업생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만들고 연기하는 연극이었다. 사랑어린학교에서는 졸업하는 해 마지막 프로젝트로 1학기엔 50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오고, 2학기엔 에세이를 쓰고 연극을 한다. 9년 동안 더 많은 것을 배우지만, 이 프로젝트들은 학교를 상징하는 프로그램과도 같다.
그날 본 연극의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연극을 보고 돌아온 우리는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함께인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배역의 경중은 있었으나, 누구 하나 무대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역할을 자유롭게 연기했다. 서로 어울려 연기하고, 다음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대기하며 서로를 돌보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편으로 생각했다. 매년 학기의 마무리로 한 달 넘게 연극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배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연극을 연습하는 과정에 선생님들은 최소한의 개입만 한다. 물론 연기와 관련한 기초적인 것은 연극 선생님으로부터 배우지만 시나리오를 쓰고 연극을 연출하는 모든 과정을 오로지 아이들의 힘으로만 해낸다.
올해도 12월이 왔고, 어김없이 연극제가 열렸다. 연극이 열리기 한 달 전, 한 학기 배움을 마무리 짓는 자리가 열렸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은 학교에서 주로 연극 연습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연습이 시작되자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올해 1~3학년 학생들은 참새 역할을 맡는다고 했다. 그러니 갈색 의상을 준비해 달라는 문자였다.
어떤 연습을 하는지, 유화는 어떤 참새인지, 대사는 있는지 궁금했다. 유화는 작년 연극제 관람 때 함께 앉아 있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그런 아이가 연극무대에서 역할을 맡았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연극이 열리는 전날, 한 선생님께서 내게 말씀 하셨다. “유화 참새가 무대에서 어떤 대사를 할지, 우리도 매우 궁금해요.”
2년 전, 유화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처음으로 발표회에 나간 적이 있다. 매일매일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무대에 올랐다. 아이들 사이에 서 있는 것도 율동을 따라 하는 것도 신기하고 기특했지만, 나는 공연 내내 눈물이 흘렀다. 유화의 얼굴에서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눈 앞의 연극을 감상하는 사이 참새 무리가 등장했다. 귀여운 참새들이 각자 자신의 대사를 했다. 드디어 유화 차례가 왔다. 유화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서 있었다.
그 장면은 무대 위에서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유화는 그 한 장면을 위해 친구, 형, 누나들과 무대 앞에서 편안하게 대기하고 또 차례에 맞춰 따라 나가 자신의 역할을 하고 내려왔다. 대사 한 줄 없었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함께하는 속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연극을 마치고 유화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다시 한번 짝꿍과 말했다. “사랑어린학교에 입학하길 정말 잘했어.”
연극 연습하는 동안 유화 담임 선생님이 쓴 배움지기 일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 “우리는 연극을 하기 위해서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놀기 위해서 연극을 합니다.” 유화가 앞으로 연기 할 아홉 번의 연극을 통해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의 기쁨을 배웠으면 좋겠다. 엉금엉금 거북이처럼 느린 유화의 다음 연극과 사랑 어린 날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