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한 가지를 꼽는다면 당연히 악명 높은 물가였죠. 빅맥지수 1위, 1인당 GDP 전세계 5위, 식당에서 물을 ‘사 먹어야’ 하고, 생수가 탄산수나 우유보다 비싸며, 그렇다고 미식이 발달한 것도 아니라서 (우리 기준에서) 꽤나 비싼 값을 지불하고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기 어려운 나라가 바로 스위스랍니다. 며칠을 지내보고 나니 다른 건 몰라도 물과 음식은 한국이 훨씬 낫더라고요.
가끔 뉴스를 읽다가 대한민국이 국가다운 국가인가를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뉴스를 자주 볼수록 더 자주 그런 의심을 하게 되지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 허울은 멀쩡한데 그 안은 곪아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 친절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 높은 생활수준, 체계적인 대중교통 시스템, 보존과 수익성을 다 잡은 관광 산업. 스위스라는 나라가 가진 것들을 보며 잠시 상상했습니다. 만약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저기 걸어오는 스위스의 국민으로 태어났다면, 지금보다 과연 더 행복했을지를요. 도무지 비교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는 가정일 겁니다.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한 판단의 요소도, 뭔가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기준도 다 달랐을 테니까요.
하지만 내가 지금의 나이기 때문에 가진 것이 아닌 다른 것들을 가진 채로 살아가고 있었을 게 분명합니다.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 다른 가족의 품에서, 다른 친구들과, 다른 음식을 먹으며,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겠지요. 그런 내가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장 이곳의 삶을 저곳의 삶과 서로 바꾸어 준다면, ‘수정’이 아닌 ‘수잔’으로 불리고, 김치찌개와 김치전의 맛을 알지 못하며, 꼬릿한 치즈 퐁듀에 빵을 찍어 먹는 게 당연하게 될 그 일상이 도무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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