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상해 버려야 할 때는
서재에 들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를 탓합니다
너도 나처럼 억울할까
상상하다가 열쇠를 창밖으로 던져버립니다
내가 피곤한 까닭은 하루를 살았기 때문일까요
꿈꾸던 일상이 아니었기 때문일까요
삶은 가까스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지만
이른 아침 양치질에도 개운한 맛이라는 게 있지 않나요
내일을 기다리는 건 추억이 되었기에
나는 오늘밤 시간이 멈추길 기대합니다”
-2013년 어느 가을밤
나는 어쩌자고 그토록 새파랗게 젊은 날 이런 글을 썼을까.
무엇이 그렇게 힘들어 이토록 현실을 비관했을까.
나는 대체로 기억을 잘 못한다. 했던 일도 말도 들었던 말도 일도 잘.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함께 남긴 소중한 추억을 종종 반토막 낸다. 가까운 사람들을 서운하게 하고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기가 어렵다.
나는 상대의 실수도, 내가 저지른 실패나 감정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잊으려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다. 그냥 금세 잊는다. 그건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진 몇 안 되는 장점이자 특권이다. 그렇다고 ‘나는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야’ 라고까지 쓸 수는 없다.
그런 내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들, 지워내려 안간힘을 써도 여전히 선명한 말들이 있다. 상처들이 있다. 그런 아픔들이 있다. 털어내고 털어내도 털어지지 않는 그 가시들은 어느 풍경 하나에, 어느 냄새 한 숨에 훅 밀려 들어와 나를 찌른다. 아, 기억은 아름답고 아픈 거구나.
사람은 기억을 쌓아 먹고 산다. 기억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흐릿해 진다. 나는 신체를 가진 기억이다. 당신은 만져지는 기억이다.
좋은 기억과 안 좋은 기억이 섞여있다. 선명한 기억과 흐릿한 기억이 섞여있다. 결코 어느 하나만으로 채울 수 없는 숙명. 망각과 기억이 오늘도 인생이라는 시간의 줄을 힘껏 당긴다.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것. 같은 날 같은 곳에 있었던 두 사람은 이후 전혀 다른 것들을 기억한다. 비슷한 것들을 기억한다면 그 기억이 바로 추억이 되는 거겠지.
몇 달 전, 쪽지가 하나 날아왔다. 박성언 아나운서의 SNS를 보면 너무 질투가 나고 분노가 인다고. 그래서 당신을 차단하겠다고. 행복한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전시해 놓은 사진들은 누군가에게 화살이 돼 꽂혔다. ‘내게도 슬픔이 있어요. 단지 그걸 나열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슬픔은 가능한 한 잊고 기쁨은 가능한 한 기억하고 싶어서 그래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다시 맨 위로 올라가 10년 전 썼던 문장들을 읽어본다.
나는 서재가 없는데 어딜 서재라고 썼을까. 그때 읽은 시는 뭐였을까.
마지막 문장을 이제는 이렇게 고치고 싶다.
‘내일을 기다리던 기억으로
오늘밤, 이렇게 내일을 기대합니다.’
나는 오늘 이 글을 받아든 당신의 하루가 기쁘게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