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이 60명 조금 넘는 광양의 작은 학교는 올해로 개교 102주년을 맞았다. 11월에 열리는 ‘학예제’를 ‘영화제’로 바꾸어 진행한 지 12년째. 그중 나와 함께한 역사가 11년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단편영화 여섯 편, 그리고 병설유치원 뮤직비디오까지 일곱 편의 영상편집 작업이 내 일 년 농사의 마무리다. 첫해에는 학급당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니, 계산해 보면 이 학교에서 만든 영화만 해도 약 70편, 뮤직비디오까지 합치면 80편이 넘어가는 듯하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영화냐?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이들 손바닥만 한 작은 핸디캠 하나로 이쪽저쪽 옮겨가며 풀샷을 찍었다가 원샷을 찍었다가, 그에 따라 사운드는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역광으로 찍힌 장면도 부지기수.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의 에피소드인데 중간중간 인물의 옷이 바뀌기도 하고, 배경의 계절감이 뒤죽박죽되기도 한다. 아이들도 그런 건 귀신같이 찾아낸다. 제법 베테랑이 된 아이들은 매주 영화수업이 있는 날이면 스스로 같은 옷을 챙겨 입고, 컷트나 염색을 하고 싶어도 영화 촬영 끝날 때까지 참는단다. 필요한 소품들은 서로서로 챙기고, 빌리고, 만들고, 우리 반 영화 줄거리를 다른 반에 절대 알리지 않는 철저함까지! 누가 뭐래도 이들은 지금 영화를 만들고 있다. 아주 열정적으로! 아주 진지하게!
“우리가 만든 영화가 제일 재미있어요!”
들을 때마다 힘 나는 이 말! 이 한마디가 듣고 싶어 올해도 열심히 달렸다. 아름다운 가을날, 더 놀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아가며, 컴퓨터 앞에 앉아 편집을 하고 또 했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고, 어깻죽지가 끊어질 듯 아파 파스를 붙이고 근육통 연고를 발라가면서. 그래도 아이들이 연기하는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웃음이 나왔다.
누구보다 똑 부러지는 아이도 카메라 앞에선 웅얼거릴 때가 있다. 원래 말수가 없는 아이는 최대치의 용기를 내었음에도 소리가 작다. 씩씩하게 표현했으나 발음이 불명확해 전달력이 떨어지는 아이도 있다. 이런 장면들은 메모해 두었다가 최대한 후시녹음을 따로 해서 붙여본다. 그럼에도 잘 안 붙거나 놓치는 장면이 생기기 마련.
오래전, 그런 요청이 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대사가 안 들리거나 놓치는 경우가 있으니 자막을 넣어 주면 어떻겠냐고. 그럴 땐 “이건 그냥 영상이 아니라 영화라서요. 노래라든지 외국어라든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자막은 안 넣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자막 작업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아세요?” 이 말은 삼켰다.
자막 작업은 영상 편집 작업 중에서도 시간이 아주 많이 들어가는 노동이다. 대사 전체를 자막처리하고 말고는 편집시간을 배 이상 차이 나게 하는 중요한 결정이다. 텍스트를 하나하나 입력하는 것도 일이고, 디자인도 고민해야 하고, 나타났다 사라질 때의 애니메이션 효과도 줘야 하고, 무엇보다 싱크를 맞추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 재생을 해야 하는 데서 시간을 다 잡아먹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소리 없이 자막만 보아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자막의 비중이 크다. 플레이어의 역량보다 편집자의 자막 센스가 영상의 재미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막 없는 영상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우리 영화제는 상영전용관이 아닌 학교 체육관에서 진행되어 소리가 울리기도 하고, 영화 상영과 공연 준비를 같이 하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면 자막이 필요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여름방학부터 조금씩 가편집을 해 둔 덕분인지 예년보단 여유 있게 작업을 마무리했고, 그사이 편집 프로그램들이 업데이트되면서 자막을 쉽게 입힐 수 있는 기능들이 많이 생겼다. 싱크에 맞춰서 자동으로 캡션이 만들어지고 거기 텍스트를 입력하거나 수정하면 자막이 완성되는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고생하면 보는 사람들이 편하겠지.’ 하고 시험 삼아 한 편만 먼저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완성본을 보고는 다시 마음을 접었다.
화면에 대사 자막이 생기는 순간, 잘 들리던 대사들도 안 듣게 되고, 눈은 아이들의 얼굴과 표정이 아닌 자막만 쫓고 있었다. 지난 3년간 마스크 쓴 채로 영화 찍느라 속상했는데, 이제야 겨우 귀여운 눈코입을 화면 가득 담을 수 있게 되었는데…. 화면 아래쪽 활자만 쳐다보게 할 순 없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최종본을 출력하면서 생각했다. 아이들이 만든 영화를 보는 동안엔 우리가 좀 더 집중하면 좋겠다고. 작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귀를 활짝 열고, 더디거나 더듬더라도 얼마든지 기다려주면서, ‘내가 잘 알아들어 볼게’하는 맘으로. 그렇게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이 만든 영화를 잘 읽는 방법이고, 우리 영화가 특별한 이유 아닐까?
관객들에게 일일이 일러두지 못했지만, 모두가 이미 같은 마음이었다. 불 꺼진 체육관, 환하게 밝혀진 스크린 속에서 우리는 하얀 글씨 대신 이런 것들을 읽었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있는 반짝이는 눈, 진지한 표정 가운데 씰룩거리는 입술, 또박또박 대사하려고 움켜쥔 주먹, 옆 친구가 실수 없이 잘하기를 응원하는 눈빛들, 처음 듣는 목소리…. 작년보다 훌쩍 자라있는 아이들의 면면이 그 안에 가득했다.
이로운
10년 전,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살아보고 싶어 순천으로 왔다. 작은 초등학교 영화 선생님, 마을 도서관에선 그림책 선생님, 가끔은 캘리그라피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이 작은 도시에서 나의 쓸모를 알아봐 주고 불러주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일 저 일을 병행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 순천생활 10년을 정리하며 <네 번째 서랍>이라는 작은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