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열린 사진전이 끝났다.
개인전은 11년 만이었다. 농담처럼 마흔 살이 되면 사진 작업을 할 거라 이야기했다. 작업이란 단어가 좀 거창한 건 아닐지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가짐은 정말 그랬다. 내 삶의 무게 중심을 사진과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두고 싶다는 마음. 좋아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올봄, 우연히 순천문화재단에서 창작지원 공모를 보았다. 덜컥 서류를 지원했고 운 좋게 서류 심사를 통과했다. 운이 좋다고 말하는 건 제출 마감일에 겨우 서류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2차 인터뷰 심사 날을 잊을 수 없다. 전날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당일엔 손과 다리마저 떨렸다. 목소리 또한 말할 것 없고. 안정제 한 알을 삼키고 세 명의 심사위원 앞에 섰다.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질문이 오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사에서 탈락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전업 작가도 아니고, 꾸준히 전시한 적도 없으니 그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마음이면서도 한 편 좋은 결과를 바랐다. 결과 공고문이 올라오던 날 하루 종일 문화재단 홈페이지를 새로고침 하며 들락날락했다. 내 이름과 연락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도 얼마나 여러 번 확인했는지 모른다.
‘정말로? 정말로 내가!?!!’
기뻤다.
많이, 아주 많이 기뻤다.
그토록 기뻤던 이유가 무엇일까? 틈나는 대로 사진을 찍었고, 전시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다. 비용 없이 공간을 대관할 수도 있었고, 아니 그건 책방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마음 한편 외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너는 이런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확인받고 싶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도 좋다고 그걸 누군가로부터 확인받고 한다니 정말 말도 안 되지 않나? 이런 내 마음이 유치하기도 했지만, 그 마음을 인정해 주고 싶었다. 사진을 공부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사진으로 인정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네 사진이 좋다는 말, 너에겐 가능성이 있다는 말, 그런 말들이 너무 듣고 싶었다.
“당신은 앞으로 계속 사진을 찍어도 좋습니다."
도장 쾅쾅! 그렇게 공증을 받은 기분이랄까?
유치하지만 진심인 이 마음을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여는 전시 준비는 시작부터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대관한 갤러리에는 공간 도면이 없었다. 전시 준비는 무더운 여름날 줄자를 들고 갤러리에 직접 가서 공간 치수를 재고 도면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순천엔 마음에 드는 액자를 만들어 줄 가게도, 사진 인화를 직접 테스트하고 인화할 수 있는 인쇄 업체도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홍보물을 만들고, 여러 가지 제작 의뢰를 하고, 단계마다 만나는 어려움에 내 일처럼 함께 걱정하고 나서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사람의 힘을 빌려서 해냈다. 여러 사람이 함께했기에 전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진을 모두 내린 날, 텅 빈 전시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한 발 뗐구나. 이제 시작이구나.’
전시장에 있던 액자와 짐을 옮기고, 이웃에 맡겨둔 아이들을 데려와 씻기고 재웠다. 피곤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 방명록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었다. 좀처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의 메시지부터 무조건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과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낯선 이들의 편지까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들이.
눈물이 펑펑 났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방명록 속에는 나와 다른 마음이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충분하다는.
또 사람들이 알려준 좋아하는 마음은 그랬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할 수 있고, 슬플 때 함께 위로 할 수 있는 마음. 그동안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잘못 알고 있었다.
전시를 마치고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좀 더 좋아하게 되었다. 사진도 마찬가지. 기쁠 때나 슬플 때 언제나 나와 함께 할 것, 언제나 함께 있는 것.
"나는 사진을 많이 좋아합니다. 나는 계속 사진을 찍겠습니다."